아이를 낳기 전까지 고지식하게도 "그림책=아이들 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서 봐도 뭔가 작위적인 것 같고 그림 하나하나에 시선을 머무는 방법을 몰랐던 저는 그렇게 그림책의 진가를 모르며 살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고, 아이의 요구대로 같은 책을 무한반복 읽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그림책을 읽고 감동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읽게 된 책이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입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유럽의 그림책 작가 10명의 인터뷰집입니다. 저자는 낯선 프랑스 타지에서 부족한 불어실력으로 인해 우연히 펼치게 된 그림책을 통해 감동받고, 그렇게 그림책이란 장르와 사랑에 빠져 결국 그림책 작가들까지 인터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작가들의 유년기 시절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세계관, 아이들에 대한 철학,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지 그 창의적 과정에 대해 인터뷰하며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까지 녹아있습니다.
10인의 그림책 작가들이 말해주는 아이들에 대한 철학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의 육아 철학과 방향까지 되돌아보며 배울 것이 참 많았습니다. 또한 비단 육아뿐만 아니라 어쩌면 창의성에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창의의 중심에 서있는 이 그림책 작가들을 통해 진짜 창의력이란 어떻게 기르는지, 이를 통해 내 아이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책입니다.
아이들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는데 표현할 용기가 없어서 질문을 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질문을 되돌려주기만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요. (p58)
엄마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아이 덕분에 엄마로 만들어지는 거라고요. 부모와 자녀의 만남은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겁니다. 한 우주가 다른 쪽을 잡아먹어선 안 돼요.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이의 작은 선택을 바라보면서 '아, 그래. 너는 나하고 다르게 그렇게 선택하고 그 길로 가려고 하는구나.' 생각해주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p60)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61)
나를 놀라게 하는 무언가와 만나야 생각이 열립니다. 빤히 다 아는 것에선 놀랄 일이 별로 없어요. 놀라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몰랐던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지요. 한데 새로운 경험이 주는 놀라움은 우리를 겁주기도 합니다. (p80)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면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성장은 유년기 아이들이 해야 하는 숙제라고 선을 그은 건 아닌지, 어른이 되면 어제 하던 대로 오늘을 살면 된다고 생각해버린 건 아닌지, 질문하고 뱉고 진화하길 멈추고 이미 결말에 도착한 사람처럼 굴고 있던 건 아닌지. (p103)
어른들은 이 세상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대로 세상을 정리 정돈해서 봅니다. 어른이 된 이후의 감탄은 결심에서 나옵니다. 아는 이제부터 여기 앉아서 구름을 보겠다, 늘상 보던 구름이지만 저것이 흥미롭게 느껴질 때까지 앉아서 바라보겠다고 결심하면 됩니다. (p111)
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존재입니다. 엄마가 안 된다고 말해도 엄마의 판단과 지혜가 정말 믿을 만한지 알아보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게 아이들 본성이에요. 어른들이 가진 금지 기준도 사실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우리는 모두 때론 엉뚱한 짓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p116)
바람직한 부모 자녀 관계는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같아야 합니다. 지하수로 연결되어 소통은 하지만 서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죠. (p118)
전 창의성이 그저 무언가를 할 용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스스로에게 무언가 해보는 것을 허락하는 마음, '왜 안 되겠어'하는 생각, '실패해도 괜찮아. 별거 아냐'라고 말해주는 자세. 이것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예요. (p146)
창의력에 대한 조언요?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열려 있을 것.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지 말 것.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것. 자신에 대한 확신을 너무 갖기보단 두려워할 것. 단, 즐거움을 놓치지 말 것.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가르쳐주죠. (p155)
저는 책에 질문을 많이 넣습니다. 하지만 답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본질이 그래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 채 나아갑니다. 우리를 발전하게 만드는 건 인생의 그 모호함입니다. (p220)
꿈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손에 잡힐 때까지 탐험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결정한 거예요. 성숙해지려면 시간을 써야해요.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고 꿈을 찾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p258)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인생을 바꿔줄 7가지 물질 (0) | 2022.01.20 |
---|---|
자존감,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프로젝트 수업 (0) | 2022.01.09 |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엄마에게 필요한 건 철학 (0) | 2021.12.16 |
인생학교(돈)-돈에 관해 덜 걱정하는 법 (0) | 2021.12.13 |
습관홈트&1일 1행의 기적-습관 제대로 잡기 (0) | 2021.12.09 |